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콘과 윈터 솔져 (문단 편집) === 혹평 === [include(틀:토론 합의, this=혹평, 토론주소1=RapidCleanCooingPolice, 합의사항1='칼리를 대표로 한 플래그 스매셔의 빌런 완성도와 타문화 시청자들에 대한 접근성')] * '''[[칼리 모건소|칼리]]를 대표로 한 [[플래그 스매셔]]의 빌런으로서 [[개연성]]''' 주인공과 관련된 캐릭터들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성장하는 시나리오가 호평인 반면, 플래그 스매셔는 [[강화인간]]이라는 개성만 빼면 평이한 [[테러리스트|테러형 빌런]]으로 평가받았다. 영화에 비해 비교적 긴 호흡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드라마의 장점이며 이에 따라 영화판의 빌런들에 비해 상당한 분량을 할당받았음에도 플래그 스매셔는 지속적으로 [[선민사상]]과 도덕적 우월주의에 도취되어 '억압받는 난민의 대변자'라는 명분을 상실한다. 칼리는 '난민들의 권리를 찾겠다'는 주장과는 달리 무고한 피해자를 살상하면서 '[[폭력|이것]]이 유일한 언어'라며 자신의 학살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다른 플래그 스매셔 멤버들 또한 나이 어린 칼리의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행하다 각개격파 당하는 [[잡몹]]으로만 소비된다. 고의적으로 테러 행위의 규모를 늘리며, 자신들이 벌인 방화로 한 가정의 가장이 사망했다는 뉴스에 '''이제 세상이 우리를 주목한다'''며 도취하는 행태는 샘이 하려는 구제의 선을 이미 넘은 것으로만 보인다. 플래그 스매셔라는 '집단'을 적으로 설정해놓고 모든 이슈를 칼리라는 개인에게 집중시킨 것도 개연성 파괴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난민 문제 등 팔콘이 대면하게 되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상징하는 빌런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플래그 스매셔 내부에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고뇌하며 제동을 거는 인물이 존재해야 했는데 칼리 혼자서 악역, 피해자, 갈등 역할을 모조리 뒤집어쓰자 오히려 역할이 서로 충돌해[* 일례로 칼리는 초반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마마처럼 난민들을 구하고 싶었다'며 '사실은 폭력보다 평화를 원한다'고 어필하더니 3화가 지나가면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테러 행위가 뉴스를 타는데 열광하는 관종 살인광만 남는다.] [[캐릭터 붕괴]]만 일어났다. 살인을 밥먹듯이 저지르며 반성이나 고뇌는 커녕 점차 자신들의 테러 행위에 도취되고 더 큰 살상 행위를 기도하는 등 시청자가 플래그 스매셔를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복잡한 악역]]한 연출은 많은 데 정작 대부분의 행적이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로서의 행태밖에 없었다. 당초 플래그 스매셔에게 드라마가 원한 역할은 블랙 팬서의 킬몽거와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된 피해자|차별과 소외로 인해 극단주의로 변해버린 대립인물]]'이었을 것이다. 작품 전체에서 아이제아와 칼리를 대비시켜 [[인종차별|흑인 차별]]과 난민 배제 이슈에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게 그 근거. 이 집단의 행보는 인종을 난민으로 바꾸었을 뿐 미국 대중문화 작품에서 나타나는 [[말콤 엑스|과격파 흑인 민족주의자]] 클리셰에[* ex) 이상적으로 등장하는 평화주의적 지도자, 바뀌지 않는 현실, 평화적인 호소는 무시하다 과격 무력 시위는 대서특필하는 언론, 그리고 그런 현상에 점차 도취되어 [[선민사상]]에 빠지는 지도부 등.] 부합한다. 제작진은 샘의 입을 빌어 '칼리는 아직 어리다', '그녀에게도 돌이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칼리 역시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너무 멀리 왔음을 인정한다. 허나 이런 연출이 매우 단편적으로 등장할 뿐 서사를 제대로 엮어줄 연출이 부재했다. 거기다 본작이 6부작이라는 한정된 분량 안에서 스티브 로저스에 대한 다른 캐릭터들의 향수, 강화인간 혈청으로 대표되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큰 힘과 책임]]', 흑인 차별, [[윈터 솔져(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전쟁 트라우마]]까지 모조리 다루려다 보니 장면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유기성이 산으로 간다. 또한 작중에서 플래그 스매셔는 [[블립]] 문제로 인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 이들이 갖게 된 분노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묘사되고, 특정한 집단이라기 보다는 온라인 어플/커뮤니티를 통해 활동하는 [[외로운 늑대|추종자 개개인]]이 지령에 따라 [[플래시몹]]처럼 순간적인 행동을 하고 해산하는 점 조직 형태로 연출된다. 직접적으로 몰려다니며 행동하는 것도 칼리 일당 대여섯명 정도 뿐. 당연히 무력도 '무장한 일반 시민'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게 상식적이다. 헌데 5화 후반부에서는 플래그 스매셔가 [[GRC(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GRC]] 회의장을 대량의 내부 스파이를 통해 장악하고[* 한둘이 아니다. 사실상 회의장 내 경호 인원 태반이 플래그 스매셔의 일원이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도 사방팔방에서 조직원들이 튀어나오며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대사도 한다.], 플래그 스매셔의 사상이라고 해봤자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하나의 나라'를 외치는 ''화풀이성''' [[무정부주의]]인데 거기에 찬동하는 추종자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들의 주 무대이자 의적 행세를 한 유럽 대륙에서는 기존의 난민 문제와 엮어 지지를 얻었다는 추측이라도 가능하지만, 미국 대도시 한복판에 발에 채일만큼 많은 추종자가 있고 그 와중에 한번도 덜미를 잡힌 적이 없다는 설정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칼리 아래로 견고한 유사 [[중앙집권제]]를 이루었으며, 도대체 각국 정상의 경호 인력을 맡을 만한 사람들이 한 두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수십억 인구의 절멸이 목표인 테러 단체에 가담할 수 있는지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이들의 암구호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국민"인 데 정작 추구하는 것은 난민들이 우대받던 '블립 이전의 세계', 즉 인구 절반의 멸망을 의미한다. 슈퍼 솔저의 묘사에도 연출 구멍이 있다. 분명 [[지모 남작(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헬무트 지모]]는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혈청의 부작용을 지적했고, 존 워커 역시 혈청으로 인해 충동조절 능력을 상실하는 모습이 직관적으로 나타난다. 허나 플래그 스매셔는 이들의 극단적인 행동이 '혈청의 부작용'이라고 추측할 묘사가 전혀 없이 그저 칼리가 학살을 지시하면 다른 구성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긍하는 장면만 반복된다.[* 단 이번 혈청은 버키의 혈청 그리고 스티브의 혈청과는 또 다른 혈청으로 이 혈청 자체에 버키와 스티브가 맞았던 것처럼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혈청을 맞으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파워를 얻기 때문에 그것을 남용하거나 그것에 도취되어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변함이 없으나 혈청 그 자체에 패널티나 부작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지모가 지적하는 부작용은 혈청 자체의 부작용이 아닌 슈퍼 솔져가 되어 인간을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되었을때 그것으로 인한 욕망과 오용으로 인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상술되었듯 칼리 역시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자신의 테러와 민간인 학살을 합리화 시키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전반에는 지속적으로 '혈청'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충동을 이겨낸 스티브 로저스의 고결함을 강조하더니, 후반부터는 이런 '혈청의 위험성'에 대한 묘사는 '존 워커'가 싹 다 가져가 버린다. 플래그 스매셔 측에서도 혈청이 일으키는 문제를 묘사하고자 했다면 충동 조절에 실패한 조직원이 돌발 행동을 벌인다거나 내분이 일어나는 묘사가 등장했어야 하지만, 이들은 일관되게 칼리의 명령에 복종할 뿐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한 시즌으로 보기에는 매우 짧은 6부작이라는 점과 코로나 사태로 시나리오가 급하게 수정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설정충돌]]이 너무 심각하다. 그 외에 상세 비판점은 [[플래그 스매셔]]의 비판 문서 참고. * '''타문화(단일인종국가) 시청자들에 대한 접근성''' 전반적으로 해당 주제의 관해서는 미국 문화에 근접한 사회를 담았다. 미국의 내적인 사회적 이슈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민감한 사항인데다, 정확한 결론이 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유색 인종 차별, 경찰 폭력 문제 등은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호주, 서유럽 등 많은 다인종 국가에서도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일들이다. 그렇다보니 주 민족이 절대 다수인 곳, 인종차별 문제가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난 적이 거의 없고, 사회적 논의도 거의 없던 국가들, 특히 국제적으로 인종,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지는 한국과 일본, 동유럽 등의 시청자들에게 공감이 되기에는 섣불리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비슷한 문제를 가진 작품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책이 쓰여졌던 사회적 배경을 모른 채 보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책 자체가 재미가 없게 느껴질 거다. 이 소설은 1920년대 미국의 상황에 대해 알아야 이해가 되기 때문.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아는 사람에게나 위대한 개츠비가 재미있는 것처럼, 팔콘과 윈터 솔져가 미국인들에게는 호평받고 재미가 있지만 미국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뜬금없는 전개가 많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조차 백인이 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들에선 인종차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거나 남부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팔콘에게 있어 인종에 대한 문제에 민감해졌다 할지라도, 평소 인종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거나 관심을 두어보지 못한 일반 대중들에겐 예상과는 다른 주제로 흘러들어가는 점에 있어서 이 주제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팔콘과 윈터 솔져에서 발생한 이유는 이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은 이렇게까지 미국 사회상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들은 가상의 인물들이 가상의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였다. 배경이 아스가르드, 와칸다, 우주면, 아예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배경과 상황을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각 작품은 모든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게 충분한 설명을 해왔다. 하지만 팔콘과 윈터 솔져는 미국 사회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고, 해당 드라마는 이미 미국인들이 알고 있을 만한 사전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미국인들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사전 지식이 미흡하니 전개가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거다.] 아무리 주제가 어렵거나 무겁다고 해도 아이언맨의 경우 '전쟁과 경제산업'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토니가 직접 겪고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을 서사에 잘 녹여 전달했으니, 이런 사회 문제를 타 문화권까지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분명 그 자체로 비판받아야 할 선택이 아니다. MCU 작품 중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루크 케이지가 흑인 차별과 할렘이라는 공간적 소재를 이용해 타 문화권과 호불호 차이가 생긴 전례가 있다. 미국 문화라는 접근성을 빼면 루크 케이지의 스토리 평가와 완성도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아이재아가 뜬금없이 나온 캐릭터라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 아이제아 브래들리는 마블 코믹스 원작에도 등장하는 인물이고, 코믹스에서도 드라마와 유사한 일을 겪었다. MCU의 캐릭터 상당수가 코믹스를 기반으로 재해석한 것처럼 인종차별이라는 작품의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캐릭터를 기반으로 등장시킨 캐릭터인 것이다. 물론 코믹스를 깊게 읽어온 사람이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캐릭터이고, 작품 기준 수십년 전에 이미 버키를 압도한 흑인 슈퍼 솔져가 있었다 + 버키는 이 사실을 기억했지만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 이렇게 외국인들이 미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면모는 블랙 팬서에서도 다룬 바가 있다. 킬몽거가 트찰라의 왕위를 차지한 뒤에 와칸다의 힘으로 전세계의 흑인을 해방한다는 주장을 했을 때 와칸다 수뇌부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본인들이야 와칸다인으로서 와칸다에서 살아와서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도 없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식민 지배를 받은 적도 없으니, 킬몽거와 미국 흑인들이 겪은 고통에는 무감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외 와칸다 입장에서 보면 불우한 외국인들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 시점이라면 몰라도 같은 민족 레벨도 아닌 '같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종 연합을 구축하자는, 민족/종교/정치 이념 등 중간 과정을 모두 건너뛴 무리한 요구였기 때문.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폐쇄주의적 국론으로 인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흑인들을 돕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죄책감이 있는 모양으로, 와칸다가 폐쇄주의적 정책을 폐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